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짜르트가  이룩한 고전주의 교향악에 바탕을 두어...

교향곡 1번을 작곡하고  이어서 그의 한 평생의 불굴의 의지와 신념으로

음악사에서 기록할 만한 9개의 휼륭한 교향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음악 평론가들에 의하면 그의 교향곡중 3,5,7,9,를 주요 교향곡으로...

짝수중 6번 "전원" 을  들어야 할 교향곡으로 치지만...

그의 9개의 명 교향곡의 바탕이 된 교향곡 1번을 올려드립니다...

비록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교향악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베토벤의 고유의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교향곡 1번은 베토벤 30세인 1800년 4월 2일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초연했던 첫 교향곡입니다.

베토벤은 그 당시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작곡가겸 유명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였습니다.

 

교향곡의 작곡자로서 늦은 감이 있지만 신중한 태도와 독자적인 곡을 만들려는

마음에 비로서 30세에 교향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슈베르트는 31세에 죽기 1년전에 9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발표는 아니고)...슈베르트의 작품은

그 당시 연주되지 못하고 사후 10 여년 지나 슈베르트를 존경하는 슈만에 의해 알려진 것이 많습니다...

초원

 

 

베토벤과 교향곡

교향곡과 베토벤은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착되어 있습니다.

그의 전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교향곡들 가운데

거봉(巨峰)과도 같이 우뚝 솟아 있는 이 9개의 교향곡은 그의 철학과 사상이 들어 있는,

그의 음악의 진수이며 금자탑으로 후세의 작곡가들 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교향곡 제1번 C장조 Op.21

베토벤의 교향곡은 1799년 그가 29세때에 작곡된 제1번 교향곡으로부터 창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첫번 교향곡을 슈뷔텐남작에게 헌정하였는데 그의 아버지가 마리아 테레사 여제(女帝)의

시의였던 관계로 슈뷔텐남작은 궁정 도서관장으로 재직히면서 18세기 음악에 열광하고 있었고

특히 바하와 헨델에 심취하여 있었으므로 그의 저택에서는 언제나 음악회가 그치지 않았고,

유능한 음악가들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짜르트와 하이든이 그에게 많은 후원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젊은 베토벤도 그의 음악회에 초대되어 바하, 헨델, 모짜르트, 하이든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제1교향곡의 관현악법은 대체로 모짜르트의 후기 교향곡과 비슷하지만

관악이 훨씬 보강되고 있습니다.

처음의 느린 도입부는 하이든이나 프랑스 서곡에 이미 나타난 것으로 베토벤은 그의 제2, 제4 및

제7 교향곡에서도 역시 이러한 수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12마디가 별로 대수롭게 들리지 않겠지만 7도화음으로 시작되는

그 첫 부분은 그 당시로서는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불협회음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베토벤의 스승이었던 네에페의 가곡,

그리고 바하의 칸타타에서도 나타난 적이 있었지만 베토벤의 그것과 같이 강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불협화음으로 개시되는 서주는 제9교향곡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조성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특히 낭만주의 음악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향곡 1번 2번은 모짜르트나 하이든 처럼 길지 않는 곡이었지만...

교향곡 3번 부터는 선배들의 영향을 탈피한 베토벤의 독자적인 곡으로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던 자유의 정신에 불타는 강한 개성의 힘과 균형을 느낄 수 있습니다..초원.

마지막 곡 교향곡 3번 Eroica(英雄) 중 제 1악장입니다.

 

제1악장 Adagio molto allegro con brio

빠른 템포로 들어가는소나타 형식이다.하이든과 모짜르트의 맛이 풍기지만 베토벤의 독특한 조바꿈의 묘미들을 느낄 수 있는 형식상의 새로운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제2악장 Andante cantabile con moto


제2악장은 제1주제를 푸가처럼 발전시킨다. 이 주제는 3화음에 바탕을 두면서 춤음악적인 움직임을 거치는데, 이를 통해 제1악장과 제3악장과의 관련성을 고집하고 있다.

 


제3악장 Menuetto. Allegro molto e vivace


제3악장은 당시의 다른 소나타에서처럼 미뉴에트라는 제목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미뉴에트 전통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베토벤의 독자적 처방이 벌써 들어있어 이후 그의 소나타 계통의 작품에서 미뉴에트 대신 쓰일 스케르쪼를 예감한다.

 


제4악장 Adagio, Allegro molto e vivace

제4악장은 제1, 2악장처럼 소나타악장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제1악장에서처럼 느린 도입부(아디지오)를 가지고 있다. 제4악장의 도입부에서 베토벤은 제1악장의 머리 모티브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곡 전체의 연결감을 이끌고, 이 모티브를 리듬적으로 변형시켜서 빠른 템포(알레그로 몰토 비바체)의 제4악장의 제1주제를 도입한다. 베토벤은 이렇게 제1교향곡에서부터 주제-모티브 작업을 통해 제1악장부터 제4악장까지를 서로 연결시켜 일종의 내부적 순환체계를 만드는 일을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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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소피 무터 가 들려드리는

사라사테의 카르멘 판타지 1악장 입니다.

아침에 출근하셔서 졸지마시라구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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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진눈개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의 소나타>라 불리우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들어보세요...

 

옜날 학교시절 음악시험에 자주 외우는 문제중에 독일 음악가" 3B"하면...

<바하,베토벤,브람스>라는 문제가 있었지요. 유럽 음악의 주무대인 독일 음악.

바하는 음악의 아버지이고 ,악성 베토벤은 그의 신체적 결함과 역경을 음악으로 극복하고

인류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음악가입니다.

브람스는 바그너와 동시대의 작곡가로 유럽 대륙이 바그너의 극음악에 빠져 있을때...

유일하게 오페라 한곡도 작곡하지 않고  순수 절대 음악에 정진한 음악가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조용히 인생을 관조하면서 겸손하나 자기의 절대 순수 음악을

지켜나간 음악가입니다...소위 말하는 신 고전주의 음악가입니다.

 





비를 생각하니 브람스의 <비의 노래>라 알려진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이 생각납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지금까지 3곡이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3번이라 하지요.

1번은 <비의 노래> ...

아침부터 내리는 비를 생각하며....

잘 들으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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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의 실내악은 어떤 면에서 그의 관현악보다 중요하다. 소수의 인원만을 필요로 하는 실내악은, 복잡한 관현악법의 부담 없이 새로운 음악어법을 실험하기 좋은 장르였으며 브람스의 내향적 성향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당시 실내악연주는 교양 있는 사회계층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었는데, 실내악의 이런 사회적인 기능은 브람스에게 매우 중요했다. 실내악이 있었기에 브람스는 그가 평생 사랑했던 클라라 슈만과 음악적으로 더 강한 유대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라 슈만은 브람스의 실내악곡을 즐겨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비판과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브람스 _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G장조 Op.78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모두 세 곡이지만 브람스가 작곡했던 바이올린 소나타는 몇 곡 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누구보다도 자기비판 의식이 강했던 브람스는 작품의 수준이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가차 없이 파기해버렸으므로 안타깝게도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단 세 곡만이 살아남았다.

1877년에 작곡된 바이올린소나타 제1번에는 ‘비의 노래’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이 소나타 3악장의 선율이 브람스의 가곡 ‘비의 노래’와 같기 때문이다. 클라라 슈만도 이 소나타를 항상 ‘비의 노래 소나타’라고 부르며 즐겨 연주했다. 그녀는 브람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소나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당신의 소나타가 저를 얼마나 흥분시켰는지 몰라요. 3악장에서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선율이 흘러나왔을 때 제가 얼마나 황홀했었는지 당신은 충분히 짐작하시겠죠. 저는 이 곡을 ‘저의’ 음악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이 곡에서 저처럼 황홀하고 슬픈 느낌을 받을 수 없으리라 믿기 때문이죠.”

클라라를 매료시켰던 것은 서정적 선율의 아름다움이었지만, 전곡을 통일시키는 ‘비의 노래’의 리듬 역시 이 소나타의 독창적인 매력이다. 방황하는 듯 자유롭게 전개되는 리듬의 유희야말로 이 음악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힘이다. 특히 1악장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한 마디를 3:2로 다르게 분할하고 있기 때문에 악센트의 위치를 바꾸어 절름거리는 듯한 리듬의 묘미를 연출한다. 어둡고 진지한 2악장에서는 리듬의 전개가 마치 안개와도 같이 애매모호하지만, 3악장에 이르러 비의 노래 모티브의 부점 리듬이 나오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처럼 다양하게 변화해 가는 리듬은 브람스 음악 특유의 애수와 서정성을 지닌 선율과 결합하여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브람스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가장조 '비의 노래', Op. 78
Brahms - Sonata for violin & piano No. 1 in G major ("Regenlied"), Op. 78

Arthur Grumiaux, violin 
Gyorgy Sebok, piano


 
1. Vivace ma non troppo 


2. Adagio – Più andante – Adagio come I


3. Allegro molto moderato – Più moderato

출처 : 색소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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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의 트럼펫(Il Silenzio) - 멜리사 베네마(트럼펫), 앙드레 류(지휘), 요한 슈트라우스 Orch 

 올해 13세인 멜리사 베네마는 네델란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관악기를 

 좋아해 6세 때 처음 리코더를 불기 시작해서 8세 때 트럼펫으로 바꾸었다.  

 9세 때 교회에서 독주를 시작해서,  현재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며 2007년 데뷰 음반 'Melissa voor U' 를 발표했다. 

 

 2008년 크리스티나 콩쿨에서 우승했고, 마스트리히트에서 앙드레 류,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와 협연에서 이 곡 Il Silenzio을 연주하여, 

 엄청난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많은이들을 감동시켰다.

 Il Silenzio - Melissa Venema    

 

 

출처 : 색소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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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에흐몬트' 서곡 Egmont Overture, Op.84 에그몬트라고 부르지만 에흐몬트가 맞다고 한다. 어색해!

 


  
 

(출처 : http://bkugotit.tistory.com/527)

 

베토벤은 1810년 5월 24일 빈에서 상연된 괴테의 <에흐몬트>를 보고, 서곡과 클레르헨의 노래, 막간 음악 등을 작곡해 이 연극을 음악화하였다. 그의 또 다른 교향곡인 <코리올란>서곡이 비극적인데 반하여, <에그(흐)몬트>는 폭군의 압제 하에 영웅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을 상징하는 듯 장대하다.

 

"에그(흐)몬트 백작은 조국을 스페인의 압제에서 구하려다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는다. 또한 애인 클레르헨은 그를 구하려다 실패하여 자살한다. 그러나 그녀의 환영은 자유의 여신이 되어 옥중의 에그몬트를 격려한다"는 것이 극의 줄거리이다. 이 곡은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을 상징하는 듯 장대하며, 객의 주제가 환상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애국의 열화로서 불타는 것처럼 연주된다.

 

 

 

네덜란드의 귀족 에흐몬트 백작

 

( Lamoral Graf van Egmont, 1522∼1568)

 

 

11곡의 베토벤의 서곡 중에도 가장 널리 알려진 명곡인 이 곡은 괴테의 비극 '에그몬트'를 읽고 감격한 베토벤이 1809년에 작곡을 시작해서 1810년에 완성한 곡이다. 그리고 이 곡은 괴테의 비 극 '에그몬트'가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상연되었을 때, 서곡과 막간 음악 등으로 사용되었다. 폭군의 압제 하의 영웅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을 상징하듯이 장대한 이 서곡은 베토벤의 비극적 인 색채의 서곡 '코리올란'과 상대적인 곡을 이루고 있다.

 

이 서곡 ≪에그몬트≫에 대한 평가는 주로 '물결 치는 심장의 고동과 공포의 예감이 제대로 그려 진 결정'이라는 극찬이 대부분일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리스트도 이 곡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서곡은 두 개의 주제와 환상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애국의 열화로 불타는 것처럼 연주된다. 그리고 이 곡의 불타는 듯한 열정은 평소 베토벤의 성격과도 연관이 된 다. 음악가를 기껏해야 귀족의 종 정도로 대우하던 시절에 그는 귀족들 사이를 늠름하게 누볐고, 자신도 귀족과 똑같이 대우해 주기를 당당하게 요구했다. - [동국대학교 문상필님의 웹해설]

 

 

 

 

베토벤의 서곡 중 가장 잘 알려진 명곡인 [에그몬트]는 괴테의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 베토벤은 괴테의 많은 작품에 감명 받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음악적 자부심 아래에 둔 가치였다. 바로 베토벤의 이러한 일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베토벤이 [에그몬트]를 막 완성했을 무렵, 괴테가 몇 주 동안의 체류예정으로 빈에 왔다. 그 기간 중에 두 사람은 때때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바이마르에서 하느님과도 같은 존경을 받고 있던 괴테는 베토벤과 함께 프라타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산책을 하고 있으려니까 많은 사람들이 전부 두 사람을 향하여 모자를 벗고 일일이 그에 답례를 하는 것은 괴테뿐, 베토벤은 무슨 상념에 잠긴 듯 먼 하늘만 응시할 뿐이었다. 일일이 모자에 손을 올려 답례를 하던 괴테도 그만 귀찮아져 이렇게 말했다. "선량한 시민들이란 정말 따분한 존재들이요, 무조건 절만 해대니..." 그러자 베토벤 하는 말, "괴테 선생,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인사는 전부 내게 하는 겁니다.

 

이러한 자부심으로 만들어낸 많은 명곡중의 하나인 [에그몬트]또한 많은 찬사를 받은 걸작이다.

 

 

 

에그몬트(Egmont, 1787)

 

이 5막 비극은 폭풍노도에서 고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다. 바이마르에 가기 전에 착수하였다가 이탈리아에서 완성하였다. 착수는 이피게니에 (Iphigenie)보다 먼저 하였으나, 완성과 발표는 오히려 늦다.

 

시대는 16세기 중엽, 주인공 에그몬트(Egmont)는 스페인의 예속에서 벗어나려는 네델란드의 독립운동 지도자이다. 스페인왕 필립 2세가 네델란드의 신교도를 탄압하기 위하여 냉혹한 알바공(Alba)을 그곳으로 파견한다. 친구 오라니엔(Oranien)이 에그몬트에게 잠시 피했다가 후일을 기약하라고 충고를 하였으나, 그는 화해되리라 믿고 그 충고를 듣지 않는다. 그런데 알바공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에그몬트를 체포하여 사형에 처한다. 그의 애인 클레르헨 (Kl?rchen)이 민중의 봉기를 선동하였으나, 민중들은 일어날 기역이 없 었다. 그녀도 독을 마시고 죽는다.

 

  Egmont und Kl?rchen

 

이 희곡도 『괴츠』처럼 자유를 바라는 주인공이 봉건적인 위정자의 강압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괴츠』의 주인공은 주위의 불합리한 압박에 반항을 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 용감히 싸우는 기사인데 반해, 에그몬트는 자신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다가 적의 수중에 들 어가 버리는 낙천가이다. 따라서 이 희곡은 극적인 움직임도, 격정적이고 발랄한 극적 효과 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원만하고, 덕있고, 인망 높은 기사가 폭군의 제물이 되는 경위를 보여주는 개인 비극에 불과하다. 괴테는 에그몬트의 역사적 사실을 이용하여 『괴츠』처럼 격정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터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이미 폭풍노 도적인 감정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는 『에그몬트』에 의해 인간성 의 고귀함을 추구한 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지니는 과도기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유럽에 유포되고 「있던 여우 라이네케」의 전설에서 소재를 취한 서사시이다. 여우 라이네케는 자기보다 약한 짐승을 못살게끔 괴롭히고, 나쁜 짓이라면 찾아가면서 하고, 왕을 속이다가 붙잡힐 때마다 교묘한 구실을 붙여 빠져 나오며, 드디어는 대신이 되어 전횡을 극한다는 이야기이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비판적이던 괴테가 여우 라이네케의 모습을 빌어 프랑스 혁명의 지도 자들을 풍자한 것이다.

 

[에흐몬트 백작 , Lamoral Graf van Egmont 1522∼1568] (백과사전 펌)

 

 

네덜란드 귀족. 제4대 에흐몬트백작으로 에스파냐-프랑스전쟁 때 펠리페 2세 군대의 뛰어난 장군으로서 1557년 생캉탱, 1558년 그라블린에서 에스파냐군의 승리에 이바지하였다.

 

1559년 브라반트 및 아르트와주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며 국가자문위원회 위원, 네덜란드에서의 에스파냐군사령관 서열에 올랐다. 그러나 에스파냐인 총독 알바공(公)의 압정에 시달리는 네덜란드를 위하여 이에 항의, 펠리페 2세에게 직소(直訴)하기에 이르렀다. 칼뱅파와의 협력도 불사한 이 저항운동으로 그는 호른백작과 함께 1567년 9월 체포되었고, 사문위원회(査問委員會)에 회부되어 이듬해 6월 브뤼셀의 대광장에서 처형되었다. 브뤼셀 중앙역 가까이에 있는 푸치사블롱공원에는 네덜란드 반란의 발단이 된 두 애국자를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러한 에흐몬트의 생애는 J.W. 괴테에게 영감을 주어 아름다운 비극작품의 하나인 《에흐몬트(1787)》를 만들게 하였고, 베토벤은 그 작품의 <서곡(序曲)>을 작곡하였다. 한편 에흐몬트가(家)의 역대 주인은 네덜란드 북부에 있는 에흐몬트 마을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안장되어 있다.


 


 Datei:Brussels - Egmont et Hornes - 20050616bis.jpg 

 

[비교 감상]

 

Herbert Von Karajan, Berlin Philharmonic in Beethoven's "Egmont" overture.

 

  

Bernstein Vienna Philharmo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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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치니 - 투란도트 中 공주는 잠 못 이루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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